110page
112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그 와중에서도 서너 명은 유족들이 파가고, 나머지 두어 명은 못 파갔을 것이다. 지금 소나무가 있는 밭이다. 그런 것이 부지기수였다. 사람들이 많이 죽으니까 개 가 시체를 먹어 미친개가 되었다. 개들이 광견병에 걸려서 난리였다. 옛날에는 도 깨비불이 돌아다닌다고 해서 그곳을 아주 무서워했다. 명주주택 자리하고, 지금 동산인 곳하고, 소나무 밭쪽이다. 2. 현상지(남, 노형동, 1930년생) 형수 김옥이(23세)는 4·3 때 희생됐다. 2년 뒤에 소식을 들었다. 어머님 다호동 친구가 말해줬다. 그날 형수 같아 보이는 사람이 도령마루 농장 옆에서 죽었다는 것이다. 총소리가 나서 뒷날 사람들이 가보니 여자가 죽어 있었다. 가매장해놨다 가 나중에 그곳에 가서 파보니 형수가 분명했다. 형수는 노형 바게밧에서 잡혀와 비행장에서 조사를 받았었다. 3. 김상철(남, 이호2동, 1933년생) 사촌형님 김상남(24세)은 셋째 삼촌의 아들이다. 형님은 일제 때 군대 생활하다 가 해방 후 경찰 1기생으로 들어갔다. 형님은 수산봉 지경에서 무장대의 차량습 격을 받고 차에서 떨어져 머리를 다쳤다. 당시 형님은 입원하여 치료를 받고 그 후유증으로 경찰에 사표를 낸 상태였다. 1948년 12월 9일로 우린 알고 있는데, 그날 경찰에 붙잡혀 가서 희생됐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연동 사는 분이 자기 아들을 찾으려고 도령마루에 가보니 우리 사촌형님이 있었다는 것이 다. 형님은 일제 신사복을 입고 있었고, 주머니에 도장이 있어 쉬 알 수 있었다. 돌 아가시고 3~4년 후의 일이다. 제사는 그 당시 아는 경찰분이 아무 날 싣고 갔다 고 알려줘서 그날 하고 있다. 4. 고순열(남, 도남동, 1931년생) 도남은 다른 마을과 달리 2연대가 와서 불태웠다. 9연대가 2연대로 바뀌면서 얼마 안 됐을 때이다. 음력으로 1948년 섣달이니 양력으로는 1949년 1월이다. 그때 마을에서 죽은 사람은 없었고, 경찰이 차로 끌고 갔다. 초나흗날 끌고 갔는 데 제사하는 거 보면 9일에 한다. 지금은 공항으로도 가고 신제주로도 가는 도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