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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칼럼 ➊ • 근우회(槿友會)운동과 그 역사적 의의 11 설치하여 여성 노동의 실태를 조사하는 한편, 파업이 발생했을 때 노동운동을 지원하기도 하였다. 여성인권 활동 이외에 항일투쟁을 지원하거나 직접 개입하기도 하였다.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 이후 전국적으로 확산된 여학생운동에 근우회가 적극 지 도·개입함으로써 일제의 견제와 탄압을 받게 되었다. 근우회는 출범 1년도 못되어 중앙의 김활란 등 민 족진영계 여성들이 적극적인 참여를 포기함으로써 정종명 등 사회주의계 여성들이 조직을 주도적으로 운영하게 되었다. 1931년 자체 내의 분규와 일제측 의 탄압 등으로 인해 신간회의 해체와 더불어 해소되 고 말았다. 근우회운동은 비록 단기간에 그쳤지만, 형식적으 로 식민지 시기 최대의 전국적 여성운동조직이었을 뿐 아니라, 그 내용적 측면에서도 한국근대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위치를 점한다. 당시 조선 여성의 특수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민족 모순과 여성을 억압하는 봉건적 유제란 이중적 억압 을 동시에 타파해야 한다고 파악한 점은 여성운동의 질적 발전을 보여준 인식이었다. 당대 여성의 실질적 인 의식 및 생활수준 개선에 노력하는 한편,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족쇄를 타파하는 데도 앞장 섰다. 또한 민족 독립 없는 여성해방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파악하고, 조직활동을 조선 사회 전체에 연결시켜 여 성들이 민족 독립투쟁과 여성해방을 동시에 수행할 것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의가 크다. 본문에 제시한 『근우』 창간호 표지는 프랑스혁명 을 상징하는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그림에서 모티브를 빌어 왔다고 추측되는데, 그 표지를 보면 여성이 깃발과 검을 들고 분연히 일어나 항거하는 모 습을 표상하고 있다. 특히 여성의 모습을 자세히 살 피면 반은 여성 반은 남성으로 그려, 남녀가 함께 투 쟁전선에 나가야 한다는 당위성을 담았다. 근우회 선 언서에서 여성의 문제는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며, 통 치구조의 틀과 이에 연동된 세계 제국주의란 전체적 구조하에서 해결해야 함을 밝힌 것은 작금의 우리에 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우리사회의 문제는 여 성 혹은 남성 각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와 국가, 나아가 지구촌과 연결되어 전세계적으로 구축된 거 대권력의 존재를 정확히 파악하고 문제해결의 방향 을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독립운동사 전공으로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 이화여대 이화사학연구소 연구원, 국민대 연구교수, 국가보훈부 연구원 등 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역사여성미래교육문화사업위원장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신규식-시대를 앞서간 민족혁명의 선각자』(2010), 『독립운동가 간호사 74인』(2021), 『일 제강점기 정신여학교출신 독립운동가』(2024) 등이 있다. 필자 강영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