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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9 한림면 7. 금능리 금능리는 한림읍 서편 해안마을로 서쪽으로 월령리, 동쪽으로 협재리, 남쪽으 로 월림리와 맞닿아 있다. 4·3 시기에는 약 300여 가호 규모의 작은 마을이었다. 마을은 1구인 동동(당시 구장 전봉호)과 2구인 서동(당시 구장 고희진)으로 나뉘 어져 있었다. 금능리에서 첫 번째 사건은 1948년 5월 7일에 일어났다. 마을 청년 박행구(24, 남)가 서북청년회에 총살당했다. 박행구는 전날 술자리에서 우익청년들과 논쟁을 벌이던 중 우익집단을 “민족을 팔아먹는 민족반역자”라고 소리 높여 비판했다. 서 청은 이 발언을 이유로 박행구를 잡으려 했고, 사건 당일 창고에 숨어있던 그를 찾아내 지금의 재능초등학교 서쪽 지경으로 끌고가 총살했다. 1 첫 사건 이후 특기할만한 사건이 없던 금능리는 1948년 12월 3일 무장대의 습 격을 받았다. 이 습격으로 인한 희생자는 현재 확인된 사망자가 7명이고 부상자 1) 정부의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는 이 사건을 1948년 3월 29일 발생한 ‘고문치사사건’으로 기술하며 4·3 직전 주요 학살사건으로 정리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조사에 따르면 학살일로 표기된 1948년 3월 29일은 양력 날짜가 아니라 음력이며, 양력으로는 5월 7일에 해당되는 것으로 알려졌 다. 또한 학살 당시 상황에 대해서도 증언에 따르면, 박행구는 지서나 주둔소로 끌려 간 것이 아니라 붙잡힌 뒤 바로 시신 발견 장소로 끌려가 학살됐다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