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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역사기행 ➊ • 서울, 독립운동과 역사의 현장을 가다 ㉒ 109 봉리(현 개봉동)에 살던 성주복 (1894~1971)은 서울지역 학생지 도부가 2차 시위로 계획한 3월 5 일의 남대문역 만세운동에 참여 하였다. 정동교회 신자이기도 했 던 성주복은 경인선을 이용하여 오류역에서 통학하고 있었다. 체 포된 성주복은 징역 6월의 실형 을 언도받았다. 3월 24일에는 부 천군 계남면 사람들이 면사무소 를 습격하여 건물과 집기를 부수 고 민적부와 과세호수대장 등 각 종 서류를 불태워 계남면 만세운 동을 벌였다. 당시 계남면에 속해 있던 고척리·개봉리·오류리·궁리· 온수리·천왕리·항리 등은 지금은 구로구의 한 부분이다. 따라 서 계 남면 만세운동에 참여한 600여 명의 주민 중에는 구로 사람들도 다수 있었을 것이다. 계남면 만세운동이 있은 지 5일 후인 3월 29일에는 구로리 만세 운동이 벌어졌다. 일제 당국의 자 료에 따르면 100여 명의 주민들 ➊ ➊ 3·1운동 관련 성주복 판결문(1919.11.6. 국가기록원 독립운동 관련 판결문) ➋ 계남면 만세운동을 설명하는 표지판 ➌ 구로리 만세운동을 담은(빨간색 표기 부분) 일제의 전국 및 간도방면 3월 29일 시위현황 보고(1919.3.30) ➋ ➌ ➍ ➍ G밸리산업박물관의 구로동맹파업 전시 부분(이하 현장 사진은 필자 촬영) ➎ 가리봉시장 입구 현판 ➏ 1970~80년대 노동운동의 역사가 서려 있는 가리봉5거리 ➎ 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