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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역사기행 ➋ • 한국통감과 조선총독의 일본 현장을 가다 ④ 109 3차 내각에서 사법대신(현 법무 대신)을 역임하는 등 주요 보직을 거쳤다. 1900년 귀족원 칙선(勅 選) 의원이 되었다. 작위는 자작. 1907년, 한국통감부의 부통감 에 임명되어 초대 한국 통감인 이 토 히로부미를 보좌하였다. 이토 가 추밀원 의장으로 임명되어 통 감직을 사임하자 승격되어 1909 년 6월부터 1910년 5월까지 재임 하였다. 그가 통감이 된 다음 달인 1909년 7월에 기유각서(己酉覺 書)가 체결되었다. 기유각 서는 대한제국의 사법 및 감옥 사무에 관한 일체 권 리를 일본에 양도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각 서로 대한제국은 국권만 남았을 뿐 거의 모든 사법 권도 일본이 강탈하였다. 부통감과 통감의 재임 기 간을 통하여 식민지 조선 을 합법화하는 과정에서 그가 끼 친 영향력은 막대하다. 그는 병 (病)으로 사퇴하였다. 일설에 소네 는 우리 불교 미술품을 많이 약탈 한 인물이라고 한다. 씁쓸한 하기의 세계문화유산 소네가 다녔던 학교 메이린칸 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 다. 이와 함께 정한론(征韓論) 원 조인 요시다 쇼인의 쇼카손주쿠 도 지정되었다. 하기시에서는 대 대적으로 자랑하고 홍보를 한다. 거리 곳곳에 선전 소개물을 세워 두었다. 쇼카손주쿠는 말할 것도 없고, 메이린칸도 정한론의 영향 을 받았던 조슈번의 교육기관이 었다(요시다 쇼인이 사범으로 강 의). 이곳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소 개한다면 자연스럽게 정한론에 관한 설명이 나올 것임은 분명하 다. 군함도나 사도광산이 조선인 의 강제 노동과 관련된 식민의 현 장이라면, 하기는 정한론을 당연 쇼카손주쿠[松下村塾]와 메이린칸[明倫館] 세계유산 설명 안내판(이하 현장 사진은 필자 촬영) 전임 제2대 소네 아라스케 한국통감(오른쪽)과 신임 데 라우치 한국통감 취임 기념으로 발행된 엽서. 1910년 7 월 30일자 소인이 찍혀있다(필자 제공). 소네 아라스케 제2대 한국통감 (위키피디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