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4page
1086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랬다. 4·3 전 기간 큰 인명피해가 없던 협재리에서 가장 큰 비극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직후인 1950년 8월 20일(음 7월 7일)에 발생했다. 군 당국이 예비검속이라는 명 목으로 주민 7명을 모슬포 송악산 섯알오름에서 학살했던 것이다. 협재 주민들은 이때 큰 희생을 치른 이유는 당시 민보단장을 지냈던 송모 씨의 밀고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송모 씨가 뇌물을 요구했을 때 응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희생됐기 때문 이다. 이날 희생된 사람은 강두훈(19, 남)을 비롯해 강영수(24, 남), 고두형(33, 남), 고성권(25, 남), 김승부(18, 남), 장대진(22, 남), 장법린(20, 남)의 7명이다. 이중 강두훈과 강영수, 김승부는 금악리 만벵듸 공동장지에, 고두형과 고성권, 장대진 은 모슬포의 백조일손지지에 각각 안장돼 있다. 협재리는 정부 인정 4·3희생자가 15명(남성 13명, 여성 2명)으로 희생자가 비 교적 적은 마을이다. 1) 4·3성 ① 웃가름성 가. 소재지 제주시 한림읍 협재 8길 26 (협재리 1832-3번지) 나. 개요 웃가름성은 한림면 4·3장성의 일부이다. 한림면에서는 1948년 가을부터 주민 들을 동원하여 장성(長城)을 쌓았다. 장성은 한림면을 감싸는 형태로, 동쪽으로는 귀덕 3구와 어도리(현 어음리) 경계에서부터 서쪽으로는 월령리까지 이어졌다. 성은 다른 마을 4·3성과 비교해 폭도 넓고, 높이도 높았다. 또한 성벽 중간 지점 에는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회곽도(回郭道)를 갖췄고, 성 밖으로는 해자(垓子)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