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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6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25, 남) 상명리 – 양호만(22, 남), 양여택(20, 남) 수원리 – 김만지(27, 남), 임종관(26, 남), 하동관(22, 남) 12월 11일: 금악리 – 강병규(24, 남), 강석희(27, 남), 강영남(27, 남), 강영후(26, 남), 박 자인(49, 남), 양난화(48, 여), 양지오(48, 남, 이명 양태하), 양창하(28, 남) 동명리 – 양무경(31, 남), 조창석(23, 남), 조창규(20, 남) 명월리 - 오태방(28, 남), 오태중(33, 남) 12월 14일: 금악리 – 강묘선(32, 남), 강신길(38, 남), 강창옥(20, 남), 고인백(41, 남), 박 인하(28, 남), 박현(37, 남), 이두옥(34, 남) 명월리 – 김두병(19, 남), 양인송(27, 남) 상대리 – 양인호(18, 남, 이명 양군필) 상명리 - 장자학(27, 남) 수원리 – 김농옥(27, 여), 김문욱(47, 여), 김정화(40, 남) 1948년 12월 9일, 봉근굴 학살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이영호(귀덕3리, 2003 년 76세)는 당시를 다음과 같이 기억했다. “내가 끌려 간 것은 민보단 연락 책임자로 있을 때였어요.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전날 (산에서) 습격이 들어서 한림지서에 연락을 갔죠. 밤에 냇가를 지나 지서까지 가 려니 고생했죠. 지서에서는 수고했다면서 밤에 가려면 위험하니 잤다가 내일 아침 밝 은 후에 가라고 했어요. 뒷날 아침, 같이 갔던 양대봉(28) 씨와 돌아오려는데 악질 서청 특별중대 놈들이 와서 데려가는 거예요. 난 그 후 이틀인가 사흘인가를 죽다 살아났어 요. 서청놈들이 발로 차고 때리고, 전기고문까지…. 난 정신을 잃었어요. 사흘만일 거예 요. 나오라고 해요. 나가니 차에 타라는 거예요. 그때 차에 타니 서청놈들이 차 옆에 총 들고 앉고, 우리가 몇 명인지… 아마 15명에서 20명 정도였던 것 같아요. 우리 동네 사 람도 있었어요. 수원국민학교 옆이었어요. 우리를 데려간 곳이. 지금은 경작지로 변했지만 당시에는 빌레였어요. 재작년인가 MBC에서 왔을 때 가 봤는데 정확히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변해 있었어요. 거기에 가자… 서청놈들이 우릴 돌아서라고 해서 쭉 세워 놓고 총을 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