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慶州金公德元義士功績碑(경주김공 덕원의사 공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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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김공덕원의사 공적비 유구한 역사를 지닌 배달민족의 자손으로 태어난 우리들이 유사이래 처음당한 경술국치를 씻기 위해 온 생애를 바치신 김덕원 의사의 거룩한 업적을 여기 이 돌에 새겨 자손만대에 귀감이 되게 하기 위하여 그의 역사적 행장을 밝힌다. 김덕원 의사의 시조는 신라국성인 경주김씨 대보공 알찌로 경순왕의 후손이며 조선왕조 창업공신인 계림군 김균을 파조로, 청사에 거울인 6조청백리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 김종순공의 18세손이시다. 의사의 고조인 김치집공은홍천락향 2세손이며 농경개혁 업적이 크다. 그가 축조한 동창보는 강원도 농경문화재 제65호다. 의사는 이러한 가계와 지리적 환경을 배경으로 국가가 루란의 위기에 처해 있을 때인 고종 13년 서력 1876년 11월 26일 김정준공의 아들로 태어나셨다. 바로 이 해가 일제군함 운양호 침입으로 소위 병자수호조약이라는 불평등 조약이 늑결되어 급기야는 망국이라는 민족통한의 원인이 된 해이다. 마치 의사의 일생은 조국의 부침과 운명 지워진 듯이 여겨진다. 의사가 19세가 되던 해가 세계사에도 유래없는 동학농민혁명운동이 폭발하여 인내천주의로 포천개벽, 광제창생의 깃발을 높이 들고 당시 부정부패가 극에 달한 부패정치를 바로 잡아 도탄에서 허덕이는 동포대중을 구하려는 동학교도들의 봉기 와중에 용약 뛰어든 의사의 불타는 보국안민의 위국충정은 그로부터 4반세기후 동학의 장두로서 저다지도 거룩하게 3.1 대의거에서 영웅적 기백을 떨치던 사실이 어찌 우연한 범사라 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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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독립운동의 주체세력이 되는 천도교 측으로서는 물걸리의 대의거는 타의 추급을 불허한 덕원의사와 같은 사생취의한 가치관이 확립된 청년용사가 있으므로 성공하였다. 이곳에서 가까운 서석면 풍암리는 800명의 동학농민군이 의로운 생을 바친 곳이며 인접한 인제군 갑둔리는 천도교 2대교주인 최시형 대신사가 은둔생활중 동경대전을 창간한 유적지이다. 이러한 주변 환경은 김의사로 하여금 홍천의거의 상징적 인물로서 주동적으로 거사를 하게 했다. 왜제의 가혹한 학정이긴 하지만 반상의 관습이 남아 있고 지탱할 만한 가산이 있었지만 조국과 운명을 같이 하기로 한 의사께서는 광복운동제전에 신분도 재산도 생명도 남김없이 바쳤다. 명망있는 신분인데도 마방을 차려 놓고 동지를 규합하고 정보를 교환했다. 조국광복운동에 큰 공을 세운 박상진, 안희제의 사도 상덕대, 백산상회를 세워 독립운동의 자금조달과 정보교환망으로 운용했듯이 의사 역시 그러했다. 그의 가슴속에 국권회복의 또 무엇이 있었겠는가? 1919년 4월 3일 인근 5개면민 3천군중이 운집해서 혼천동지하는 대한독립만세의 함성, 왜제 헌병경찰과 그를 추종하는 보조원들은 망지소조하여 총기를 난사 마침내 8렬사가 흉탄에 쓰러지고 부상자가 100여명 (동아일보 기사) 장두의 마방과 주택은 소각되니 그 참상은 목불인견이었다. 이 거사의 주모자인 의사는 피신길에 올라 복골의 은장봉, 가루개 척야산, 용호터 다락방, 누번이 고든골 높은 봉 깊은 골짜기에서 풍찬로숙 앙천봉에 올라 통곡하고 청로봉에 올라 기원하며 때로는 반격하고 쫓기기를 4~5년, 슬프도다 이 아픔 어찌 필설로 다할 수 있단 말인가! 범상한 인간은 상상키 어려운 고든골 호방촌을 야밤에 자주 찾아 의사를 존경하는 원 까불이와 정 똑보의 충정어린 만류 연규환선생 부부의 극진한 보필로 용호터 다락방에서 은둔생활중 무료함을 달래느라 삼은 짚신이 하도 고와서 시집가는 처녀 들이 다투어 얻어 갔다는 일화는 그의 초인간적인 기개와 충만한 온정을 엿보기에 충분하다. 급기야 왜경에 체포되어 영오의 생활 수년, 모진 고문으로 실명되고 극심한 옥고의 여독으로 국권회복의 큰 뜻을 품은 채 하세하셨다. 천인공노할 잔혹한 일본제국주의관헌은 의사의 시신 조차도 가족이 거두지 못하게 하였으니 구둔치 공동묘지 어느 곳에 매장되었을 거라는 바람 같은 추측만 남아있다. 아! 억울하고 슬프다. 이 세상에 망국보다 더 큰 아픔과 슬픔이 또 있겠는가? 이 단장의 아픔을 무엇으로 치유한단 말인가! 의사의 일생은 분노와 투쟁과 통한의 세월이었다. 의사의 구국열정은 거북하고 위대하다. 신이시여 이 민족의 가슴마다 망국의 아픈 역사를 잊지 말게 하소서. 이 글을 마감하면서 천국옥좌에 계신 님에게 명복을 빔과 함께 속세에 계실 때처럼 굽어 살피사 민족의 지상 염원인 조국의 통일을 이루게 하시어, 신라국 황금시대에 경주김씨 문중에서 성웅과 인걸이 배출되어 백성이 격양가를 불러 태평성세를 즐겼듯이 7천만 민족이 하나되는 민족의 슬기를 음우하소서. 광복회장 청뢰 이강훈 근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