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page

109 제주읍 의 사형판결자들의 총살과 1950년 한국전쟁 직후 예비검속자들에 대한 학살이다. (ㄱ) 1949년 10월 2일(음 1949. 8. 11.) : 제주공항 동북쪽 끝지점에서 제2차 군법회의(1949. 6. 28.~7. 7.) 사형판결자 249명이 총살 후 암매장됐다. 이때 9 연대 군인 15명도 함께 총살됐다. 이들은 그 후 60여 년을 어둠 속에 묻혀있다 2008년 시작된 정부와 제주4·3연구소의 <제주공항 2차 유해발굴사업(2008. 9.~2009. 9.)> 결과 세상 밖에 나오게 됐다. 당시 이곳에서는 259구의 유해와 유 류품 1,311점이 발굴됐다. 이들 사형판결자 중 용담리 주민은 없다. (ㄴ) 한국전쟁 직후인 1950년 8월, 제주경찰서와 주정공장에 갇혀 있던 주민 약 500명이 이곳에서 총살됐다. 증언에 따르면, 이들 희생자는 트럭 10대에 가득 실려 왔다 한다. 이들은 당시 제주경찰서 관할지역의 예비검속자들로 이들 유해 는 아직까지 발견되고 있지 않다. 제주북부예비검속희생자유족회는 “당시 제주 와 애월, 조천지역 예비검속자 1,000여 명이 주정공장이나 제주경찰서에 수용됐 었다. 토벌대는 이중 절반되는 500여 명은 산지항에서 배에 태우고 나가 수장(학 살)했고, 나머지는 제주공항에서 총살했다. 우리 아버님들 시신은 분명 공항 어딘 가에 묻혀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껏 찾지 못하고 있다. 정말 안타깝다”고 토로 했다. 이곳에서는 2007년, <제주공항 제1차 유해발굴사업(2007. 8. 30.~2007. 12. 15.)>이 벌어졌다. 당시 제주비행장 남북활주로 서북쪽 끝지점의 발굴은 목격자 들의 증언을 토대로 시작됐다. 암매장 구덩이는 그간 공항 확장공사로 거의 훼손 돼 있었다. 5개월의 작업 결과 1자 형태로 길게 뻗은 구덩이에서 유해 약 128구 와 유류품 659점이 발굴됐다. 그 후 발굴유해에 대한 DNA 감식도 서울대학교에 서 이루어졌다. 당시, 많은 증언으로 이 유해들은 제주·조천·애월의 예비검속자일 것으로 누구나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전자 감식 결과는 아주 달랐다. 희생자 들 모두는 서귀포경찰서(남원·서귀·중문)와 모슬포경찰서(안덕·대정·한림) 관내 의 예비검속자들로 판명됐다. 그간 이들 지역 유족들은 자신들의 부모는 트럭에 실려나가 서귀포 앞 바다에 수장됐다고 믿고 있었다. 북부예검유족들에게는 믿음 이 실망으로, 서귀포지역 유족들에게는 안타까움이 환희로 바뀌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