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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0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리, 동명리 등지의 주민들이 수원리 지역에서 많이 희생됐다. 주요 사건을 정리해 보자. 1948년 7월 31일: 김원석(35, 남)은 7월 미상일에 토벌대에 연행됐다 이날 한림 부두로 끌려가 총살됨 10월 30일: 김문현(21, 남)을 비롯한 신희철(28, 남), 양종섭(28, 남) 3명은 10월 말께 마을에 삐라가 뿌려졌다는 이유로 토벌대에 연행됨. 이들은 한림국민학교에 감금됐다 강구동에서 총살됨(양종섭은 현장에서 부상만 입고 살아남음) 11월 16일: 한림중학생 강두형(18, 남)과 이경혁(20, 남), 좌태봉(18, 남) 3 명이 운동장에서 교직원과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총살됨. 이날 귀덕리 김계준(16, 남)도 함께 학살됨 12월 9일: 김만지(27, 남)를 비롯한 임종관(26, 남), 하동환(22, 남) 3명은 12월 3일 금능리가 무장대의 습격을 받은 뒤 연행됐다 대림리 봉근굴에서 총살됨 (대림리–학살터–봉근굴, 참조) 12월 14일: 김농옥(27, 여)을 비롯한 김문욱(47, 여), 김정화(40, 남, 구장) 3명은 12월 3일 금능리가 무장대의 습격을 받은 뒤 연행됐다 대림리 봉근굴에서 총살됨 (대림리–학살터–봉근굴, 참조) 1949년 1월 12일: 김만수(29, 남)는 새벽에 마을 보초를 서던 중 토벌대에 연행 됨. 그는 한림국교에 감금되었다가 이날 동명리 신겡이서들에 서 총살됨 (동명리–학살터–신겡이서들, 참조) 1월 21일: 임종률(29, 남)은 1월 미상일에 토벌대에 연행된 후 한림학교 에 감금되었다가 이날 한림리 물왓에서 총살됨 (한림리–학살 터–물왓, 참조) 그 후 수원리 주민 학살은 한국전쟁 발발 후 벌어진 예비검속으로 이어진다. 2 구 주민 이방순(47, 남)과 양종섭(28, 남)은 예비검속으로 한림리 어업창고에 구 금됐다가 (한림리–민간인 수용소–한림 어업창고 옛터, 참조) 이방순은 1950년 8 월 20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끌려가 상모리 섯알오름 옛 일본군 탄약고터에서 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