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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9 한림면 3. 수원리 수원리는 한림리 동쪽에 위치한 해안마을로 한림로(구 일주도로)에서 바다까지 잘 정돈된 농경지가 넓게 펼쳐진다. 동쪽으로 귀덕리와 대림리, 남쪽으로 한수리 와 이웃하고 있다. 구름드르(구릉밧, 구릉드르)라 불리는 넓은 농경지는 넓이가 100여 헥타르(ha)에 이르며 토질도 좋아 주민들의 절대적인 생활터전이 됐다. 해방 직후 수원리는 1, 2구로 나뉘어져 있었다. 1구는 상동과 중동, 하동, 전동, 대수동(大水洞)과 북동쪽 바닷가 마을인 용운동(龍雲洞, 다른 이름 가좌동(加座洞) 이 속해 있었고 약 350가호의 주민들이 거주했다. 2구에는 약 150가호의 주민들 이 거주했다. 현재 수원리는 1구였던 지역에 상동과 중동, 하동, 전동, 대수동, 수 전동, 신성동, 용운동의 8개 자연마을이 속해 있다. 2구는 분리(分里)되어 한수리 가 되었다. 4·3 시기 수원리에는 몇몇 유력자가 있었다. 이들 지역 유력자 중에는 한림중학 원을 설립한 고원주가 있었고, 4·3 발발 때까지 마을 활동을 주도했던 김현국과 그의 두 아들 김행돈(항일운동가), 김한석이 있었다. 그러나 4·3이 일어나자 김행 돈 형제는 일본으로 피신했다. 그 후 주민들은 서청과 군경토벌대에 많은 시달림 을 받았다. 그러나 수원 주민들에게 특별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주변 대림리와 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