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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2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무장대와 내통했다며 연행돼 귀덕리 창낭거리에서 총살됨. 이 영호(21, 남)는 무장대 습격 소식을 전하러 한림지서에 갔다가 무장대와 내통한다는 혐의로 한림국민학교로 연행됨. 그는 다 른 사람들과 대림리 봉근굴로 끌려가 총살됐으나 손에 부상만 입고 살아남 (대림리-학살터-봉근굴, 참조) 12월 9일: 강창오(25, 남)를 비롯한 고덕봉(19, 남), 양재수(32, 남) 3명은 12월 5일 향사에 집합했다가 한림국교로 연행된 뒤, 이날 동명 리 신겡이서들에서 총살됨 (동명리-학살터-신겡이서들, 참조) 12월 18일: 김여옥(27, 남)을 비롯한 이원석(20, 남), 이창수(26, 남) 3명은 한림지서로 연행됐다 한림다리 밑에서 총살됨 1949년 1월 12일: 부문수(20, 남)는 무장대 관련자라며 연행됐다 동명리 신겡이 서들에서 총살됨. 이보윤(19, 남)은 마을에서 보초를 서던 중 서청단원에게 연행됐다 한림리 명랑골에서 총살됨 1949년 초 토벌대는 지서가 없던 지역에 경찰파견소를 세워 마무리 토벌에 나 섰다. 귀덕1구에는 현재 귀덕1리 청년회 사무소가 있던 자리에 파견소가 세워졌 다. 당시 이곳에 파견된 경찰은 주임 태민규를 비롯하여 주로 북한 출신들이었고, 이들로 인한 피해가 적지 않았다. 태민규는 당시 미인으로 소문난 이모 씨의 딸과 강제결혼했다. 그는 당시 토벌작전에 필요치도 않은 자신의 이름을 딴 태평정(太 平亭)이라는 망루를 지서 앞쪽에 세우기도 했다. 현재까지 귀덕리에서 4·3희생자로 정부가 인정한 사람은 모두 81명(남성 76 명, 여성 5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