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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2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어업창고에는 5~60명의 사람들이 짧게는 하루에서부터 길게는 두 달 동안 갇혀 지 냈어요. 남녀 구분도 없었어요. 식사는 가족이나 친지들이 가져다준 걸 먹거나, 보리쌀 만 가져다주었을 경우에는 직접 지어먹었죠. 수감 기간 취조를 받거나 고문을 당하는 일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면회는 공식적으로 허가되지 않았죠. 입구에 경찰이 지키 고 있어서 창고문을 통해 먼발치로 가족들의 얼굴만 확인할 뿐이었어요. 그러나 일부 유족들은 면회를 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하루는 식사를 빨리 하라고 해요. 빨리 식사를 마치라고. 경비 서던 순경이. 그래서… 식사하는 도중인데 경찰관이 와요. 이제 우리는 다 죽었구나 생각하고 있었 죠. 호명을 하고 나자 이름 불린 사람은 다 나오라고 해요. 난… 운이 좋았는지…, 다른 몇 사람과 함께 살아남았어요.” 이날(1950년 8월 19일) 호명된 사람들은 모슬포 송악산 자락 섯알오름으로 실 려가 다음날 새벽 군인들에게 집단학살됐다. 이날 희생된 사람은 무릉지서에 구 금됐던 9명을 합해 모두 63명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의 시신은 1956년 3월 30 일, 유족들에 의해 수습돼 현재 금악리 지경 만벵듸 공동장지에 묻혀 있다. 한림리 예비검속 희생자는 14명으로, 강원세(30, 남)를 비롯한 고아(42, 여), 김 한림 어업창고 옛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