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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0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좌태봉(18, 남, 수원리)이었다. 군인들은 이들이 좌익교사에 동조하고 무장대와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이유로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총살했다. 당시 한림중학교 학생이었던 양병익(제주시 용담2동, 2003년 73세)은 이 사건 현장을 직접 목격했다. “1948년 4월 사태가 발생하자 3학년 학생 중 한림과 거리가 먼 지역에 사는 학생들, 특히 명월·금악·저청 등 중산간 지역 학생들이 무장대로부터 입산권유를 받는 일이 잦아 졌어요. 이런 와중에 3학년 학생 몇몇이 인민무장대에게 연락을 했다고 9연대 군인들에 의해 총살당하는 사건이 벌어졌죠. 당시 9연대는 한림국민학교에 주둔하고 있었어요. 그날 9시경일 거예요. 우린 1교시 수업을 하고 있었죠. 군인들이 학교를 포위하고 호 각을 불면서 교무실로 들어가 교장에게, ‘무장대에게 정보를 제공한 학생이 있다’며 학 생들을 집합시키게 했어요. 당시 교장은 이북 출신이었죠. 이북에서 내려온 서북청년 단이 주도권을 장악하면서 한림중학교에도 선생 중 5명이 이북 출신이었어요. 전교생이 운동장에 집합했어요. 전교생이 집합하면 주번장이 총지휘를 담당하는데 마침 그날은 내가 주번장이었어요. 군 책임자가 조회대 위에 올라갔어요. 그리곤 ‘너희 들 중에 인민무장대에 연락하는 사상이 불온한 사람이 4명 있다. 이들을 불러내서 총 한림중학교 옛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