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4page

1046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일 금릉리 습격과 1949년 1월 3일 협재리 습격이 있은 다음 벌어졌다. 지금까지 확인된 희생자는 24명이다. 3 물왓 학살과 관련해 지역 주민들이 당시를 기억했다. <상명리 양계수> “상명리에서 명월하동으로 소개 갔던 사람들은 옹포 통조림공장으로 재차 소개했어 요. 옹포공장으로 가기 전이었죠. 명월하동에서 소개민들을 불러모았어요. 그리고는 여 러 사람을 한림국민학교로 끌고가서 모진 고문과 취조를 했죠. 그때 나도 끌려갔어요. 나는 이미 죽기를 각오했어요. 교실에 있던 15명을 한림지서로 끌고가 취조한다며 온 갖 고문을 다 하는 거예요. 매에 못 이겨 ‘했다’고 한 사람은 따로 앉혀서 담배도 물려주 고 했어요. 난… 그렇게 고문을 당하면서도 안 한 것은 안 했다고 버텼죠. 죽어도 죄를 뒤집어쓰고 죽기는 싫었어요. 나를 따로 앉히더군요. 그때 15명 중에 6명이 나와 같은 쪽에 앉아 있었어요. 나중에 우리 6명을 불러서 지서 문밖으로 내보내며 갈 수 있냐고 물어요. 난 거의 기다시피 하고 명월하동으로 돌아왔어요. 그때가 협재인가, 금릉에 습 격든 때였을 거예요. 나중에 우리와 같이 풀려나오지 못한 사람들은 한림국민학교 옆 의 물왓에서 집단총살당했다고 들었어요.” <금악리 양서옥> “저는 명월로 소개갔죠. 명월하동과 동명이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는데 우린 동 명에 갔어요. 저녁이었을 거예요. 겨울에 눈도 쌓이고… 새벽 네시 반이나 다섯 시쯤이 었어요. 사람들을 죽이겠다, 살리겠다 끌고가고 난리가 났어요. 난 아버지가 불시에 잡 3) 1948년 12월 4일: 명월리 - 오남택(27, 남) 12월 5일: 금악리 - 강석하(19, 남), 김철수(23, 남), 양사진(19, 남) / 상명리 - 김창오(52, 남), 부치 언(57, 남), 양영남(16, 남) 12월 7일: 상대리 - 장기남(27, 남), 장순옥(23, 남), 장일봉(35, 남) 12월 14일: 상대리 - 장성일(29, 남) 12월 23일: 금악리 - 강옥련(27, 여), 박홍일(38, 남), 양세호(23, 남), 이일부(52, 남), 이재봉(26, 남) / 명월리 – 강달보(27, 남) / 한림리 – 양경생(39, 남), 홍성도(31, 남) 1949년 1월 16일: 명월리 – 오계춘(22, 여), 오찬규(67, 남), 홍계출(57, 여) (* 세 분은 일가족임) 1월 21일: 수원리 – 임종률(29, 남, 이명 임양삼) 1월 미상일: 명월리 - 김홍종(19,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