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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3 한림면 1. 한림리 한림은 일제강점기 한림항이 건설되고, 일주도로가 확장되면서 급속히 성장해 제주도 북서부 지역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4·3 시기 한림리는 이런 한림면의 중 심지였고, 1, 2, 3구로 나뉘어진 큰 마을이었다. 호수는 1구와 2구를 합해 2,000 호, 진동산이라 불리는 3구는 약 70호, 인구는 1만 명이 넘었다. 한림에서 첫 사건은 무장대의 습격으로부터 시작됐다. 1948년 4월 3일, 무장 대는 한림지서를 기습했다. 이 습격으로 숙소에서 잠을 자던 김록만(38, 남)이 무 장대에 살해됐다. 김록만은 북한 출신으로 당시 경찰로 근무하고 있었다. 무장대 는 5·10선거 이후인 5월 14일 낮에도 한림지서를 습격했다. 이 습격으로 지서 망 루에서 보초를 서던 경찰 강태경(26, 남)이 살해됐다. 또한 무장대는 이날 밤 강 구리도 기습해 양용운(42, 남) 일가족을 납치한다. 강구리는 양용운이 가족과 함 께 정착하며 설촌된 마을로 당시 한림2구에 속했다. 무장대는 끌고간 양용운과 부인 오완(41, 여), 아들 양성보(17, 남), 양춘보(15, 남), 양득보(11, 남) 5명을 상 대리 돗지내 인근에서 살해했다. (상대리–학살터–돗지내, 참조) 그 후 8월 19일 에는 한림지서 지서장이었던 이화영(23, 남)이 무장대가 나타났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가 협재리에서 살해되는 사건도 있었다. (협재리-추모공간-한림읍 충혼 묘지,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