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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들은 공포에 휩싸임2 4·3 시기, 용담리 주민들의 유일한 집단학살사건은 1949년 1월 5일 묵은터마 을에서 발생했다. 이날, 서청은 위장토벌작전을 벌여 묵은터마을과 도두리 주민 12명을 공항 입구에서 학살했다. 한편, 용담리 관내의 제주비행장과 속칭 도령마루는 많은 주민 집단학살이 이 루어진 장소로 알려져 있다. 제주비행장의 경우, 당시 비행장 동북쪽 끝(어영마을 과 옛 사수동의 중간 지점)에서 몇 차례의 집단학살이 벌어졌다. 그중 1949년 10 월 2일에 있었던 군법회의 사형수 249명의 총살과, 1950년 한국전쟁 직후 예비 검속자들에 대한 집단학살이 대표적 예이다. 이곳에서는 2007년부터 두 차례에 걸친 대단위 유해발굴 결과 400여 구의 유해가 발굴됐다. 도령마루 3 는 당시 용담리와 도두리, 연동리, 오라리 4개 마을의 접경 지역이었 다. 이곳 도령마루에서는 수시로 주민학살이 이루어져 전체 규모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앞으로 이 두 지역에 대해서는 더 많은 자료와 증언조사가 필요하다. 용담리의 주요 사건은 다음과 같다. 1948년 12월 19일: 박옥매(35, 여, 개성 출신, 더럭국민학교 교사)는 학교를 습격 한 무장대에 살해됨 12월 23일: 배창아(36, 남, 이명 배두봉)는 금성상회(포목점)에 근무하던 중 토벌대에 연행돼 박성내 부근 말방앗간에서 학살됨. 이날 그 를 포함해 6명이 희생됨 1949년 1월 5일: 묵은터 주민 고달국(46, 남), 고재권(27, 남), 김승훈(19, 남), 박 기호(23, 남), 박영화(38, 남), 신두옥(18, 남), 신정숙(31, 남), 양치화(34, 남), 양호찬(29, 남) 9명과 도두리 문공도(17, 남), 문병숙(39, 남), 문재경(29, 남) 3명은 마을입구 초소에서 보초 1) 당시 제주공항 남쪽에 있던 15호 규모의 작은 마을로 지금은 모두 공항부지에 편입돼 남아 있지 않다. 2) “미군이 용담리민을 구타”(제주신보, 1947. 10. 4.) 3) 도령마루는 40여 년 동안 해태동산으로 알려지기도 했으나 제주시가 2019년 4월 원래의 이름을 되 살리기로 하면서 도령마루 이름을 되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