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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2025년 4월 순국 Inside 길 따라 얼 따라 순국 역사기행 ① 히 느꼈다”고도 했다. 이어 강상 규는 “이 일로 해서 나는 지금부 터 목숨을 조국에 바쳐 반드시 조 선을 독립시키고 다음 올림픽은 조선에서 개최하여 그 때만큼은 당당히 태극기를 휘날려 우리 조 선민족의 우수함을 세계에 선양 하고, 나의 이름도 후세에 남기자 고 결심하였다”면서 김재원에게 도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이미 비밀일기를 작성하는 방 식으로 중일전쟁을 활용한 ‘조선 독립 10년 계획’을 수립하여 다듬 고 있던 강상규는 동료 학생들에 게 질의서를 제시하여 답변을 받 는 방식으로 본격적인 동지 규합 에 나섰다. 하지만 강상규의 조선 독립 10년 계획은 자신이 일제에 체포되어 징역 2년형을 선고받으 면서 일단 좌절되고 말았다. 경기 중에 있던 또 다른 조직인 조선인 해방투쟁동맹(C.H.T) 소속이었던 이철주(후작 이재완의 장손)가 일 제 경찰에 연행되면서 강상규가 준 질의서가 발각되는 일이 벌어 진 것이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기념관 평화시장 노동자로 일하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48~ 1970)은 1970년 11월 13일 “노 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 준법을 준수하라!”는 구호를 외 치며 자신의 몸을 불살라 노동문 제를 우리 사회의 중심에 올려놓 은 인물이다. 전태일기념관이 청계천변에 들 어선 것은 2019년의 일이다. 서 울시가 노동 중심, 노동 존중 도 시를 강조하면서 노동의 상징 전 태일을 기리는 기념관을 설립하 였고, 전태일 정신을 기리는 사업 을 하고 있는 민간단체 전태일재 단이 위탁운영하고 있다. 전시관 에는 전태일이 일기에 남긴 “오늘 같은 내일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문구를 비롯한 전태일의 삶을 이 해할 수 있는 전시물, 당시의 노동 실태를 알 수 있는 작업장 모형, 전태일이 노동 존중의 회사 설립 을 꿈꾸며 구체적으로 구상했던 ‘태일피복’ 등이 전시되어 있다. 많은 학생들과 노동자들에게 사 랑과 연대, 실천이라는 전태일 정 신을 느끼면서 노동인권의 소중 함을 배우는 훌륭한 교육마당의 역할을 하고 있다. ➎ 6 · 10만세운동 소식을 전하고 있는 동아일보 기사(1926.6.11) ➏ 대동단사건의 예심 종결 소식을 전하고 있는 조선일보 기사(1920.6.29) ➎ 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