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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종(金漢鍾) 1883.1.14-1921.7.8. 본관은 김녕(金寧)으로 충청남도 예산 출신이다. 의병장 민종식(閔宗植) 부대에서 소모관(召募官)으로 활약한 김재정(金在貞)의 맏아들이다.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하였으며, 국권이 일제에 의하여 침탈당하자 나라를 구할 것을 맹세하였다. 김한종은 1916년 7월에 김경태(金敬泰) 김재창(金在昶)과 함께 조선총독 및 고관들의 암살을 모의하였으나 일본경찰의 사전 검속으로 실패하였다. 이에 김한종은 경상도에서 박상진이라는 인물이 국권회복을 위해 널리 동지들을 모은다는 말을 듣고 채기중의 소개로 1917년 경주로 그를 방문하여 대한광복회에 가입하였다. 이때 김한종은 대한광복회 충청도 지부장에 선임되었다. 대한광복회 충청도지부는 홍성·예산·아산·청양·천안을 중심으로 설치되었다. 대한광복회 충청도지부는 홍주의병의 영향하에 홍주의병에 직접 참여했거나 의별적 성향을 가진 인물들을 중심으로 조직되었으며, 이런 성격이 충청도지부 조직할 수 있는 사상적 배경을 제공하였다. 대한광복회 충청도지부는 한말 의병운동이 1910년대 독립운동으로 발전해 간 구체적 실체로서 주목된다고 할 수 있다. 대한광복회 충청도지부 중 예산지역에서는 지부장 김한종 집안의 인물들이 다수 참여하였다. 이들은 예산군 광시면 신흥리를 중심으로 거주하고 있던 김녕김씨 집안 인물들로, 김한종의 부친인 김재정을 비롯하여, 김재풍(金在豊) 김재철(金在哲) 김재창 김재인(金在仁) 김원묵(金元默) 김완묵(金完默) 김성묵(金成默) 등이었다. 김한종 가문 이외의 인물들 또한 김한종의 부친인 김재정의 제자들로서 충청도지부에서 많은 활동을 했다. 대한광복회는 무장투쟁을 위하여 부호들에게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충청도지부의 군자금 모집은 지부장인 김한종의 책임하에 전개되었으며, 다른 어느 지역보다 활발했다. 충청도지부에서 자산가들에게 발송한 군자금 모집 고시문은 160여 통에 이르고 모금액수도 170만원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미 식민지권력에 안주하려는 부모들의 비협조로 군자금 모집이 뜻대로 진행되지 않자, 대한광복회는 군자금의 모집을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친일부호들을 처단하기로하였다. 이에 김한종은 김경태에게 지령하여 친일분자인 도고면 면장 박용하를 처단하였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김한종은 체포되어 1921년 대구형무소에서 사형당하였다. 김한종의 사형으로 충청도에서 대한광복회 조직은 기반을 잃고 말았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