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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7 애월면 시작되는 11월 17일 이후에 벌어졌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빠른 것이었다. 이날 원 동은 마을 자체가 완전히 초토화되고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는데 다행스럽게 화전동에서는 인명 피해가 없었다. 한편 초토화작전 후 여성들과 일부 몇 가호의 주민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 은 마을 근처 밀림지대인 한대비케에 움막을 짓고 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 중 50여 명은 다음 해 2~3월께 군·경·민 합동 대토벌작전 당시 숨어있던 폭낭오름 의 굴에서 발각돼 주정공장 등지로 잡혀갔고, 다른 많은 사람들도 토벌대를 피해 다니다가 잡혀죽거나 행방불명이 됐다. 당시 호수는 40여 호(하화전 20호, 상화전 20호) 정도로 알려지고 있으며, 호주 로는 하화전동에 문오성, 문주관, 김병용, 이병진, 문재호, 문창호, 문응선, 문승 휴, 문주팔, 문윤경, 문안휴, 김광호, 문규칠, 안권용, 양봉수, 김정용, 김인현, 김 준현, 장갑송, 장정삼 등이 있었고, 상화전동 섯동내에 고봉생, 고석주, 고태옥, 진 영만, 진영숙, 동동네에 양실용, 양창선, 오항춘, 김기팔이 있었으며, 공초왓에는 고한용, 남석호 등이 있었다. 화전동 ‘솔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