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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10월 29일: 강이검(21, 남)을 비롯한 4명이 잃어버린 마을 자리왓의 불미 터에서 군인들에 학살됨 11월 13일: 김준현(25, 남) 3형제는 군인들이 화전동을 초토화시키자 아랫 마을로 내려가다 총살됨 11월 20일: 강승윤(27, 남)은 11월 15일께 밭에서 일하다 연행된 뒤 이날 한림 옛 오일장터에서 학살됨 한편, 어도1구에 소개령이 내려지지 않았던 반면 2구에는 1948년 11월 23일 부터 25일까지 3일 간 소개하라는 명령이 내려지고 초토화작전이 벌어졌다. 주 민들은 1구로 70% 이상이 소개하고 나머지는 연고자를 찾아 귀덕 등 해변마을로 흩어졌다. 소개지에서도 크고 작은 사건으로 많은 사람이 학살됐다. 그중 사람들 이 여럿 희생된 사건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49년 1월 2일: 강병천(24, 남)을 비롯한 3명이 어도국민학교에 다른 사람들과 집합했다 연행된 뒤 행방불명됨 1월 6일: 강봉남(26, 남)을 비롯한 5명이 1월 2일 어도국민학교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집합했다 이날 애월리 남문에서 학살됨 1월 15일: 강덕일(47, 여)을 비롯한 12명이 구몰동을 기습한 무장대에게 학살되고, 현재곤(50, 남) 등 3명은 후유장애인이 됨 2월 7일: 강몽익(28, 남)을 비롯한 3명이 1월 2일 어도국민학교에 집합 한 후 연행됐다 풀려남. 그러나 재연행 후 사라봉 굴에서 이날 총살됨 2월 17일: 강원익(28, 남)을 비롯한 3명이 무장대와 연락한다며 군인들에 연행됐다 이날 애월리 옛 오일장터에서 학살됨 현재 어도2구의 옛 자연마을은 모두 복구되지 않은 채 남아 있고, 다수 주민들 은 1구에 신설된 신명동에 거주하고 있다. 현재 정부가 인정한 봉성리 4·3희생자는 134명(남성 112명, 여성 22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