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page


101page

갈평운강전승기념공원. 한말 일제침략기 갈평은, 1907년 9월 11일~12일 이틀간 운강의병부대가 일본군 1개소대를 괘멸시킨 격전장이었다. 12년 후 이곳 갈평장터는 독립만세를 외쳤던 곳이다. 일제강점기 전국 방방곡곡에서 들불처럼 일어났던 3.1만세운동은 1919년 4월 13일 김용사 지방학림 학생들의 거사 소식에, 이틀 후 인근 마을에서 도로 부역 나온 주민들과 함께 장터에서 만세시위를 벌였다. 대미산에서 발원하는 신북천을 안고 하늘재 옛 고개 길목에 위치한 갈평은, 장터마을을 중심으로 갈산·옷갈벌·황장모리 안갈벌·바깥갈벌 마을이 산재하고 있다. 아울러 인근의 고요, 팔영, 당포, 용연, 평천, 관음, 중평리를 아우르는 당시 신북면의 중심 소재지였다. 또한 해방 후 극심한 좌우 대립으로 말미암아 1949년 9월 23일 국군에 의해 안갈벌에서 20여 명의 마을주민 희생자가 발생 하였다. 이처럼 갈평리는 문경지역 근현대사에서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피할 수 없었던 중요한 역사의 현장이다. 사)운강이강년의병대장기념사업회는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서 가장 뚜렷한 족적을 남긴 한말 의병전쟁의 횃불 운강선생의 최대 전승지인 갈평리에, 선생의 義로운 삶과 장렬한 구국정신을 이어받아 암울했던 갈평리 역사 현장을 지키다 돌아가신 선조 들의 넋을 후세에 널리 알리고자 기념공원을 조성하였다. 운강 이강년(1858. 음12.30.~1908.10.13.) 문경시 가은읍 상괴리(도태마을)에서 태어나 1880년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지만, 1884년 갑신정변을 계기로 낙향하여 학문에 전념했다. 1895년 을미사변 이후 단발령이 내려지자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운강은 1896년 2월 23일 도태장터(가은 상괴리)에서 창의 농암장터에서 친일관찰사 김석중과 순검 2명을 처단하고, 2월 26일 고모산성으로 진군하여 관군과 일본군에 맞서 싸웠다. 이후 1907년 7월 고종의 강제퇴위와 군대해산으로 발발된 후기의병항쟁에서, 경북과 충북 강원도와 경기도 등 광범한 지역에서 일본 군경 토벌대에 맞서 대유격전과 산악전을 펼쳤다. 이리하여 운강은 한말 의병전쟁사에서 탁월한 지도력과 용맹심으로 일제의 조선반도 침탈에 막대한 타격과 손실을 주었다. 운강은 1908년 7월 2일 청풍 작성산 전투에서 발목에 총상을 입고 피체되어, 그해 10월 13일 51세의 일기로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정부 에서는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여 그 뜻을 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