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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2025년 4월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3월의 전설(113회) 내 8개 구장들에게 교부하였다. 4월 3일 저녁, 송재 만은 한 집에 사는 도호의숙과 반곡서당 훈장을 겸 하고 있던 유학자 한운석(韓雲錫)을 면사무소로 오게 하여 만세시위 계획을 알리고, 시위 당일에 군중들 에게 배포할 「애국가」를 짓도록 하였다. 송재만 등은 한운석이 지은 「애국가」를 등사판으로 300~400매 가량 등사하였다. 일제 경찰에 압수당한 「애국가」 내 용은 다음과 같다. 간교한 일본은 강포하게 주장하여 마침내 우리나라를 억지로 빼앗아 우리들은 이처럼 통탄과 만나게 되어 살아도 죽은 것 같고 죽어서도 묻힐 곳이 없다. 이 원수를 갚아야 한다. 여러 사람이 노력하여 한마음으로 협력하여 불구대천의 원수를 갚고 무궁하게 후대에 전해 줄 우리나라 를 독 립시키자. (「이인정 등 판결문」, 경성복심법원, 1919.12.24) 만세시위를 하면서 「애국가」를 작사하 여 등사 배포한 것을 드문 일이다. 한편 이들은 이날 밤 송재만이 옷을 지 으려고 구입해 두었던 3자짜리 광목으로 태극기를 만들었다. 이때 동지들의 부인 들도 태극기를 만들었다 하는데, 「남상락 자수 태극기」가 실물로 남아 독립기념관 에 보관되어 있다. 이 태극기는 직접 짠 명 주에 정성껏 색실로 수를 놓은 가로 44cm 세로 34㎝의 크기이다. 대호지면사무소 집결과 이동 4월 4일 오전 8시경, 대호지면사무소 앞에 출포리, 도이리, 사성리, 적서리, 두산리, 조금리 등 6개리 주 민 400~500명이 집결하였다. 면장 이인정이 나서 일장 연설을 했다. “여러분들을 집합시킨 것은 도로 수선 때문이 아 니라, 조선독립운동을 하기 위한 것이니 각자는 이에 찬동하여 조선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부르면서 정미 면 천의시장으로 나아갑시다!” 후에 지역에서 만든 『약사(略史)』에는 30자(약 10m)짜리 대나무 장대에 태극기를 달아 광장 한가 대호지 만세시위 주도자 의 1인 남상락(후손 제공) 대호지면 만세시위 참여자 김양칠 · 남성우 · 송재만(이상 「일제 감시대상 인물카드」) 대호지면 만세시위를 이 끌었던 이인정 대호지면  면장 대호지면 만세시위 애국 가 작사자 한운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