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가야왕국 탐사. 창녕의 비화가야(比火加耶)
잊혀진 가야왕국 탐사. 창녕의 비화가야(比火加耶)
1918년에서 1919년에 걸쳐 일본인에 의해 교동고분군의 일부가 발굴 조사되었지만 발굴보고서가 제대로 간행되지 못한 것은 물론, 발굴유물의 대부분은 일본으로 옮겨가고 일부만 국내에 남아있다. 일본으로 옮겨간 유물의 일부분이 현재 도쿄 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고한다.
가야왕릉탐사 나라잃은 나를 흙으로 덮지말라고한 금관가야의 마지막왕 구형왕릉과 덕양전, 김유신 사대비
가야왕릉탐사 나라잃은 나를 흙으로 덮지말라고한 금관가야의 마지막왕 구형왕릉과 덕양전, 김유신 사대비
가락국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의 무덤으로 구형왕은 가락국 제10대 임금이며, 532년 신라에 멸망됨으로써 신라 덕흥왕에게 덕으로 나라를 양도하고 이 곳에 와 살다가 묻혔다고 전해온다. 무덤의 형태는 경사진 지형을 이용하여 잡석으로 방형의 단을 이루면서 피라밋
가야왕릉탐사 경남 고성의 작은가야가 아닌 소가야
가야왕릉탐사 경남 고성의 작은가야가 아닌 소가야
“고성군은 본래 고자군(古自郡)”이라고 되어 있으며, ≪삼국지 三國志≫ 위서 동이전 한조에는 변한 12국 중 고자미동국(古資彌凍國)이 있는데, 이 두 사서에서 ‘고자’는 동음이자(同音異字)로 표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고자’의 ‘자’는 성(城)을 뜻하는 우리 말의 고어이다. 그러므로 신라 경
가야왕릉탐사 후기 가야연맹의 중심 안라국(安羅國)의 고도, 함안(咸安)의 아라가야(阿羅伽倻)
가야왕릉탐사 후기 가야연맹의 중심 안라국(安羅國)의 고도, 함안(咸安)의 아라가야(阿羅伽倻)
아나가야(阿那加耶), 안라(安羅), 아야가야(阿耶伽耶), 아시량국(阿尸良國)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전기 가야연맹은 금관가야를 중심으로 42년부터 400년까지 형성된 연합 집단이다. 209년 포상팔국이 쳐들어 오자 신라에 도움을 청하고 물계자 장군의 공으로
가야왕릉탐사 김해 금관가야의 구산동 고분군, 대성동 고분군
가야왕릉탐사 김해 금관가야의 구산동 고분군, 대성동 고분군
금관가야는 본가야(本伽倻)라고도 한다. 원래 9촌(村)의 장(長)이 있어서 각촌을 다스리다가, 수로왕이 나와서 9촌을 통일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수로는 그때의 군장(君長)이 아니라, 후대로 내려와 본가야 중심의 6가야 연맹체를 결성할 때의 가야의 중시조(中始祖)라는 설(說)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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